영은이가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어서여러 가지 일로 손이 많이 가요.남편과 큰 딸 정은이가 집에 같이 있을 때는 감당이 되지만 나하고 영은이 단 둘이서만 있을 때 대소변 못가려서 싸게 될 때 힘이 더들어요.그런데 가족이 있어서 영은이가 대소변 못가리는 것 때문에 한밤중에 자다가도 깨어야 하고 어떨 때는 새벽에도 깨어서 뒤처리하는 것도 여러 해 계속 되니 몸이 지칠 때가 많죠. 병원에서 영은이의 몸을 보살피다 그것이 집에서도 계속이어지니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무거워지는 영은이를 돌보다 혼자 남몰래 운적도 많았어요. 해도 해도 영은이를 보살퍼주는 표시가 안나기에 수없이낙심하며 하나님께 내 기도 언제 들어주실려는 지 여쭤볼 때가 많았죠.나도 영은이가 얼른 회복하고 일어나서 전에 건강하게 뛰놀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길 원했지만 그건 제 욕심 이었나봅니다.영은이가 사고난후 10년이 지난 스믈한살 때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의 후원방송에 우리가족 네명이 출연한 후에 들어오는 후원금 가지고 영은이를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받게 했어요. 영은이는 입원한 다음날 오후 1시쯤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밤10시가 넘어서야 나오는 대수술을 했는데요 영은이의 오른쪽 다리의 상한 뼈를 들어냈다고 한 주치의의 얘길 들었어요. 영은이의 오른쪽 다리의 상한 뼈를 들어냈기에 이제는 영은이는 더 이상 걷게 되는 희망을 가질 수 없어 버려야 했어요. 그후로 나는하나님께 영은이의 문제를 놓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영은이에 대한 기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어 영은이의 이름만 부르는 기도만 해왔어요. 온 가족이 다함께 영은이를 보살펴도 몸이 힘들어 음식 먹은 것이 체해서 다음날 먹은 음식 전부다 토하고 내 몸이 축늘어져서 병원 응급실에 두번 갔다 오기도 했는데 주일날에 전날에 먹은 음식 이 체해서 다토하느라고 교회에 예배 드리러 못간적도 있습니다. 그 후 여러 달 지난 후에도 자주 체해서 토했는데 그후로 토하고 병원에 가는 것이 더 힘들어서 체할 때 먹는 약을 먹고 어떤 날 체했을 때 교회 전도사님께 기도 부탁 드렸고 담임 목사님께도 문자로 기도 부탁한적도 있고요 내가 개인적으로 다음 카페에서 활동하느라고 알게 된 목사님 께도 메일로 기도 부탁도 드렸어요.그렇게 기도 부탁한후 다음날 아침 되니 깨끗하게 회복되었고 그후로 더 이상 체해서 심하게 통하는 일은 안생겼어요.그랗게 내 몸이 지치도록 몸이 불편한 영은이를 보살피는데 집중하다 오랫동안 만나뵙고 싶었던 아버지를 뵙지 못하고 영은이가 8살때 아버지를 뵌 후 20년이 자난후 5년전 추수감사주일이 지난 다음날 새벽에 여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주일날에 요양원에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줬어요.아픈 아이에게 집중해서 보살피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뵙지 못해 죄송했어요. 소천하셔서 아버지의 빈속에 차려진 일산장례식장에 가서 여동생하고 같이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서서 기도하고 여동생하고 잠깐 얘기하고 왔어요.아버지는 생전에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셨기에 장례식장에는 아버지의 이름 옆에 집사 직분 기지신 것도 써있었어요.아버지의 원래 고향은 이북에 있는 경기도 개성이 고향이고 6.25사변이 터졌을 때 피난내려오셔서 사셨는데 고향에 가보지도 못하시고 소천하셔서 마음이 무서웠어요.이제 고백하는 글 마무리합니다.여전히 몸이 불편한 영은이가 몇년전부터 몇달에 한번 또는 몇주에 한번씩 입에 거품 물고 경기를 할 때가 예고도 없이 와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서 영은이 위한 기도도 꼭 함께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